신념의 강자 의리의 화신 백절불굴의 애국투사 김대석동 묘소참배

김영승 종군기자 | 기사입력 2020/02/26 [15:31]

신념의 강자 의리의 화신 백절불굴의 애국투사 김대석동 묘소참배

김영승 종군기자 | 입력 : 2020/02/26 [15:31]

 

신념의 강자 의리의 화신 백절불굴의 애국투사 김대석 동지 묘소참배

 

  © 자주일보

 

 

김대석 선생은 제주 조천읍에서 출생했다.

결혼도 해서 가정을 가지고 살면서 일본을 오가기도 했다.

19651113일 악법인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0년 형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복역했다.

당시 박정희 파쇼정권 때 비전향 말살 고문 구타 행위가 비전향 자를 수용하고 있는 감옥마다 비일비재하게 이루지고 있었다

 

중앙정보부는 일선 담당 전향 공작 반 놈들에게 전향독촉까지 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라도 한사람이라도 더 빼내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따라서 김대석 동지도 예외일 수 없었다

 

놈들의 인간 이하의 열악한 처우 속에서 가해지는 탄압과 일상적인 압박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 속에서 신경은 날카로워져 고혈압이란 병까지 얻어 210-130이란 수치를 나타내고 있는 고혈압 환자로서 안정된 생활 속에 병원치료를 받아야 할 처지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만기 가까운 비전향 자부터 우선 적으로 전향시켜야 한다는 그들의 정책적 조치에 따라 가혹하게 탄압을 받아 오고 있는 현실 속에서 도저히 건강한 모습으로 출옥할 수 없다는 막다른 골목길에 들어섰다.

 

그렇다고 사상과 양심을 저버릴 수는 없고 해서 최후의 자살을 선택하여 드디어 1971104일 만기 4년을 남겨두고 감옥 방 변소 뒤 창살에 수건을 찢어 꼬아 목매 자살로서 생의 마감해 조국과 민족을 향한 양심과 사상을 올곧게 지키신 백절불굴의 애국 투사의 역사적 기록을 남기었다.

가족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이었지만 우리 투사들은 어떻게 살다 어떻게 고귀한 생으로 마감해야 하는가를 뜨거운 교훈으로 남기었다고 역사는 평가할 것으로 확신하는 것이다.

 

놈들은 가족 면회 시 부인의 이혼을 상심하여 자살했다고 기록을 남기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도 만기 날을 기다리고 있었던 외동딸 김순선 씨는 어머님이 부산에서 밀수품 장사를 하며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가끔 어머니를 찾아갔으며 자살하기 얼마 전에 편지에도 만기에 나가면 과수원에서 가족과 함께 일하겠다는 편지도 받았는데 어머니 이혼 운운은 말이 안 된다고 했으며 건강의 상태는 골절이 쑤시고 아프다는 것은 고문을 가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고 말하기도 한 기록을 남기었다.

 

같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문 구타를 이기고 출옥한 비전향 장기수 선생들은 하나 같이 이구동성으로 악명 높은 대구 감옥의 특사는 살인 도살장과 다름없다고 말하고 있다.

 

대석 동지! 한참 일할 나이에 우리 모두의 곁을 떠난 것은 애석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동지의 묘소를 찾는데도 40여 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묘소 한 곳을 찾는 데에 40여 년이 흘렀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가는 길의 장벽이 그 얼마나 두꺼웠는가 하는 것을 절감케 하는 것이며 미제에 의한 민족분단의 아픈 역사임을 실증시커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늦게라도 선생의 묘소 앞에 동지를 흠모하는 후대들과 함께 서서 뜨거운 동지애가 담은 술 한 잔을 바쳐 올입니다.

 

대석 동지! 오늘의 묘소 참배는 우리가 고령의 나이에 후대들에게 참배의 길을 터주기 위한 것임을 기쁘게 생각하여 주시고 동지의 살아생전의 고귀한 삶은 당대와 후대들에게 뜨거운 교훈이 되리란 믿음을 확실하게 실증시켜 주고 있습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따님도 어버지의 뜻을 받들어 잘 살아가고 있으니 한시름 짖으시고 평안히 잠드시면서 조국 통일의 길에서 영생하시기 바랍니다.

 

 

2020. 2/22, 당신을 사랑하는 후대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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