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열사 황필구 선생의 묘소를을 찾다

김영승 기자 | 기사입력 2019/07/26 [20:57]

통일열사 황필구 선생의 묘소를을 찾다

김영승 기자 | 입력 : 2019/07/26 [20:57]

 통일열사 황필구 선생을 찾다

▲ 황필구 선생의 묘소    © 자주일보

 

▲ 황필구 선생의 육촌 동생과 함께한 김승 선생ㅅ     © 자주일보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성원으로 조국의 자주통일을 위해 일하다 옥사한 황필구 선생은 전라북도고창군의 평해(平海) 황씨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익산농림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주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당시 함경남도 원산(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강원도원산시)에서 검사로 일하다 한국 전쟁이 끝난 뒤 공작원으로 남파됐다가 체포됐다. 끝까지 전향하지 않다가 체포된 지 26년 만인 198512대전교도소에서 환기통 철창에 목을 매 스스로 생울 마감했다. 숨진 뒤 고향인 고창군 성내면에 묻혔다.[

 

남민전 간첩단 사건으로 들어온 수감자들, 재일교포 유학생들, 장기수 노인들의 기막힌 사연은 오늘도 소리 없이 우리 가슴을 울린다. 그중 죽음으로 배움을 남긴 사람들의 사연이 숙연하다. 남파 된 통일일꾼 출신 황필구 선생, 이용훈 선생 두 장기수 선생의의 죽음이 특히 그렇다.

 

단짝으로 생활하던 두 선생은 대전교도소에서 악명 높은 소장을 만나 인간적인 접촉과 생활조건마저도 빼앗기고 죽음보다 더한 고문의 고통을 견디어 냈지만 끝없는 전향 공작을 뒤로하고 남아 있는 동지들을 위해 차례로 목을 매 생을 마감하여 사상 정치적 순결성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

남민전은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의 약칭이다. 이 조직은 19771'한국민주투쟁위원회'를 결성하여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유인물 및 기관지인 민중의 소리8차례에 걸쳐 배포하는 등 반 유신 투쟁을 전개했다.

청년학생위원회를 조직하여 '민주구국학생연맹', '민주구국교원연맹', '민주구국농민연맹'의 결성을 시도하다가 1979104일 이재문·이문희·차성환·이수일·김남주 선생 등을 비롯 84명의 조직원이 구속되었다. 남민전이 조선과 관련된 '무장 간첩단'이라고 밝힌 경찰과 달리 재야에서는 '사상 최대의 사상범 조작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재판 결과 39명이 석방되었고, 사형을 선고받은 이재문 선생은 옥사했다. 신향식 선생은 사형이 집행되었고, 전수진 선생은 병보석 후 생을 마감했다. 나머지는 1988년까지 차례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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