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열사들의 덕유산 발길을 쫒다

김영승 기자 | 기사입력 2019/07/29 [20:38]

혁명열사들의 덕유산 발길을 쫒다

김영승 기자 | 입력 : 2019/07/29 [20:38]

 

달래산천 덕유산 기행의 단상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국주의와 추종국가에 의해 장렬히 산화한 혁명열사들을 기리다.      © 자주일보 김영승기자

 

▲     © 자주일보 김영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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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덕유산 기행은 진달래산천 총책임자인 조성복 감독의 지도하에 언제나처럼 진행되었다. 덕유산 기행의 도달 목적지는 19515월에 개최된 6대 도당위원장 회의 비밀장소 답사였다. 7/27일 토옥동계곡 솔밭 사이에서 야영하고 28일 등산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27일 솔밭 사이 야영지는 못 가고 저녁 무렵에 8명이 토옥동계곡 입구에 천막을 치고 일박했다. 28일 아침에 나머지 인원들이 도착하여 18명이었다. 일행은 등산 장비를 갖추고 등산하려 할 때 감시 요원 3명은 비 폭우 때문에 입산 금지령을 내렸다고 하면서 막아섰다, 아무리 사정을 다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리하여 토옥동 계곡을 접고 황점계곡을 택하기로 다시 결정하고 급히 차를 몰았다. 가는 길은 유명한 60령 고개를 넘어 돌고 돌아 황점골 등산 입구에 도착하여 오르기 시작했다. 비는 내리다 말다를 반복하고 있는 가운데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와중에 여성 회원 한 분이 배가 아파 힘들어 하고 있어 마침 의사 회원 여성의 침구술로 월성재까지 무사히 오를 수 있었다.3.18km를 오른 폭이다.

 

여기서 한숨을 고르고 기념촬영 한 다음 토옥동계곡으로 직행했다.

 

계곡물은 성난 범처럼 우루렁 거리며 내리치고 있었다. 삿갓봉 골짝에서 내리치는 골짝물과 합치는 곳에서 점심을 들고 다시 올라 드디어 목적지인 6개 도당 회의 아지트에 도착했다. 이과정은 골짝물을 건너다 훌적 빠지기도 하고 신발을 벗고 건너는 회원도 있었다.

 

미리 준비한 제찬을 조촐하게 차리고 추모제를 올렸다.

 

이 회의에서는 아는 바에 의하면 당시 전쟁 때라 제2 전선을 형성하기 위하여 남조선 무장유격대를 남부군 산하로 편입하는 문제가 토의되어 전남 도당만 반대하고 결정하여 이현상 선생을 사령관으로 하는 남부군이 탄생되었던 것이다. 이 남부군도 1년 후 해체되어 지대로 편성되었다, 이때 이현상 선생은 독립4 지대장이었다. 남조선 빨치산 투쟁의 종막을 고하는 날까지 지속 되었다.

 

이 회의를 거처간 도당위원장들은 한 줌의 재로 산화하여 간 아픈 역사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현상 선생은 지리산 빗접골에서, 박영발 전남 도당위원장은 지리사 뱀사골에서, 방준표 전북 도당위원장은 덕유산 망봉에서. 남경필 경남도당 위원장은 지리산 대성골에서. 박우현 충북 도당위원장은 청주 참세골에서. 박종근 경북도당위원장은 경북 신불산에서 각각 희생되었다고 한다. 이분들과 수많은 전사들을 기리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마무리 하고 사진 촬영한 다음 하산 길에 올랐다.

 

덕유산 월성재 능선을 목표를 설정하고 두 소조로 나누어 오르는데 바위, 산죽, 가시밭을 해치며 급경사지를 타고 오르는데 온 힘을 다 쏟았다. 첫 소조가 먼저 월성재에 도착했고 둘째 소조가 나중에 무사히 합류해서 대오를 정비하여 황점 첫 출발지점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시간은 벌서 7시를 넘어 뒤풀이할 시간을 같지 못하고 다음달 만남을 기약하면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

 

진달래 산천 기행은 202010월까지 마감하고 다큐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일 것이다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다는 조감독님을 비롯한 진달래 산천 회원님들의 사기는 충천하다. 많은 관심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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