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성산 백두산 답사기

이정섭 기자 | 기사입력 2019/08/03 [16:12]

혁명의 성산 백두산 답사기

이정섭 기자 | 입력 : 2019/08/03 [16:12]

 

민족의 성산이며 조국 혁명의 피가 스며 있는 백두산!

 

그래서 혁명의 길에 나선 사람들은 백두산에 올라야 하며 백두산 칼바람을 맞아 보아야 한다고 조선의

지도자들과 혁명 선배들은 말하고 백두산을 오른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백두산 칼바람을

온몸으로 견디는 사람은 자기 신념을 견결히 지키지만,

칼바람을 피하는 사람은 변절자가 된다고 했다고 한다.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두 차례에 걸쳐 백두산 답사기를 게재했다.

 

아직은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아 백두산을 갈 수 없기에 노동신문 기사를 통해 부감해 보기로 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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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주일보



8월 3일 토요일


유구한 역사와 절승경개로 자랑 높은 내 조국
조종의 산 백두산을 찾아서 
  

기슭에서는 분명 물결이 쉼 없이 출렁이는데 천지의 한복판에서는 백두의 산발을 비껴 싣고 눈부신

햇발을 끝없이 발산하고 있으니 보아도, 보아도 또 보고 싶은 초록색 물면은 하나의 거대한

거울이랄까, 정교한 구슬 바다라고 할까?

 

저마다 두 손으로 백두산 천지의 물을 한 웅큼 퍼서 쭉 들이켰다. 백두산 천지의 물까지 마셨으니

우리의 몸에서는 성산의 기운이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절로 상쾌해 졌다.

 

우리는 오랜 기간 백두산 천지 종합탐험대에서 일해온 한 연구사를 만났다.

 

그는 지구상에는 화구호를 비롯한 자연호도 많지만, 우리의 백두산 천지처럼 높은 산꼭대기에

있으면서도 크고 깊고 아름다운 자연호는 보기 드물다고 이야기 했다.

 

백두산 천지는 우리나라 자연호들 가운데서 물 깊이와 물량에 있어서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한다.

 

그는 떼 지어 노는 천지 산천어가 백두산 8경으로 유명한데 오늘은 천지 산천어 떼만이 아니라

빙어 떼가 이곳에 자기 주소를 정하여 천지의 풍치를 더해주고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면서 천지의 한복판에서 비루봉의 만물상을 비롯한 백두 연봉들을 바라보는 기회는 쉽게

차례지지 않는데 오늘 어디 한번 백두산이 아끼는 진짜 경치를 보자고 하면서 우리를

고무 단정으로 이끌었다.

 

구명조끼까지 입고 고무단정에 몸을 싣고 보니 마치 탐험 대원이 된 심정이었다. 누구에게나

쉽게 차례지지 않는 책이었다.

 

단정을 타고 초록색 물 면에 은구슬을 뿌리며 호수 한복판을 기운차게 달리노라니

아니나 다를까 하늘과 땅, 호수의 3대 미가 조화된 희한한 경치가 한눈에 안겨 왔다.

 

장군봉과 향도봉, 해발봉을 비롯한 백두 연봉의 자태도 웅건 장중하였지만, 그에 뒤질세라

천지 호반을 둘러싼 아름다운 소 분지들의 모양은 장쾌하다고밖에는

더 다른 말을 찾을 길이 없었다.

 

뭉게뭉게 피어오른 구름은 하늘이 아니라 호수에 떠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 구름을 타고 훨훨 날으는 듯 단정을 달리며 기기묘묘한 바위와 절벽들로 신비경

펼친 비루봉의 만물상을 관망하는 감정과 흥분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하랴.조선의 자랑,

세계의 명승으로 손꼽히지 않을 수 없는 백두산 천지였다.

 

단정을 타고 달릴 때까지만 하여도 세찬 격랑을 예고하며 움씰움씰하던 천지 물이 갑자기

잔잔해지는 것이 참으로 신비스러웠다.

 

백두산 천지 종합탐험대대원들은 세계적인 명승으로서의 천지의 진짜 모습을 보려면 역시

겨울에 와보아야 한다고 하면서 은빛 세계를 펼친 천지 호반의 경치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었다.

 

흰 눈 덮인 천지 호반에 눈보라와 강풍이 세차게 몰아칠 때면, 두껍게 얼어붙은 천지 위에

쌓였던 눈이 휘말려 오르기도 하고 커다란 눈산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순간에 옮겨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눈보라가 멎고 햇빛이 비쳐들면 백두 연봉의 절벽 턱들마다에는 독특한 모양새의

얼음들이 줄줄이 매달려 갖가지 아름다운 음향을 터뜨린다.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천태만상의 얼음 조각으로 변하는 모양도 장관이지만 햇빛이 비쳐들 때

갖가지 아름답고 신기한 색조들이 피어나고 흩어지는 황홀경은 오직 백두산 천지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적인 경관이라고 한다.

 

정녕 백두산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경치를 다 합쳐도 비기지 못할 천하제일 명산이였다.

 

백두산에서 우리는 참으로 잊을 수 없는 순간순간을 보내었다.만약 누가 백두산의 아름다움을

글로 쓴다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고 물으면 우리는 주저 없이 대답할 것이다.부피 두터운

몇 권의 책으로도 모자랄 것이라고.

 

자그마한 조약돌 하나도, 바위틈에 피어난 한 송이의 꽃도 무심히 스쳐 지날 수 없는 이곳에서

그 모든 아름다움을 다 느끼고 일일이 전하려면 하루가 아니라 백날도 모자랄 것이니

누군들 달리 말할 수 있겠는가. 아쉬움에 아쉬움을 덧쌓으며 우리는 기행 길을 이어갔다.

 

다음 목적지는 백두산 밀영 고향 집이 자리 잡고 있는 소백수 골이었다.

 

선오산 밀영 쪽으로 향한 길로 한참 걸었더니 유정한 숲의 바다가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에서 보아서는 어디가 어딘지 모를 것 같더니 정작 수림을 가까이하니 전설 속의

신비경이란 듯 독특한 느낌을 자아내는 유별한 지세가 확연히 드러났다.

 

맑고 시원한 공기가 폐부로 일시에 흘러들었다. 울창한 원시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쾌감이었다.

 

공기가 참으로 맑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문득 며칠 전에 본 백두산 기후 자료가 떠 올랐다.

 

백두산은 아름다운 풍치와 고산지대의 독특한 기후조건으로 하여 사람들의 건강과

활동에 유리한 측면이 적지 않다.

 

백두산 일대는 기압과 기온이 낮으며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공기 중의 습기가 적어진다.

백두산 일대에는 태양복사량이 많고 특히 자외선 양이 매우 풍부하다.

 

이런 자료를 더듬으며 우리는 사기문 폭포라는 표식비가 세워진 곳에 이르렀다.

 

사기문폭포, 예서 백두산의 폭포 절경이 시작되는 것인가?

 

호기심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고산지대의 폭포를 처음 보는지라 우리의 발걸음은 저도 모르게 폭포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기나긴 세월 높고 험한 곳에 자리 잡고 인적도 닿지 못하여 이름 없이

쏟아져 내리던 폭포였다.

 

백두 산야에 조용히 묻혀 오랜 세월 잠자던 이 폭포를 사상, 기술, 문화의 3대 혁명의 깊은

뜻을 담아 사기문 폭포라고 이름 지어 주시어 세상에 빛을 뿌리게 하여주신 분은

위대한 수령님이시었다.

 

과시 주인을 잘 만난 백두산의 또 하나의 복이었다.

 

사기문 폭포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세 번 꺾어 내리는 3단 폭포였다.

 

천지에 시원을 둔 샘물이 골짜기를 따라 흐르다가 바위벽 밑으로 떨어진 것이어서 폭포수가

손이 얼어들 정도로 차가웠다

 

 

 

▲     © 자주일보

 

▲     © 자주일보

 

사기문 폭포는 멀리서 보면 세 장수가 빼어 든 장검 같아 보였다.

그로부터 얼마쯤 떨어진 곳에 있는 백두 폭포는 바람에 흩날리는 백전노장의 두툼한 수염발을

방불케 하였다.

 

백두 폭포 밑에는 얼핏 보기에도 직경이 수m는 잘되어 보이는 물웅덩이가 있었다. 10m나 되는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두껍게 얼어붙은 얼음덩이에 구멍을 내고는 그 밑으로 도도히

흘러가는 것이 가히 장관이었다.

 

그런가 하면 층암절벽과 주변 능선을 아름답게 장식하며 앞을 다투어 피어난 만병초를 비롯한

갖가지 꽃들은 폭포의 풍치를 한껏 돋구어 주고 있었다.

 

보기에도 시원한 감을 주는 계곡을 따라온 종일이라도 거닐고 싶었다.

 

사계절의 경치가 한눈에 펼쳐진 이런 곳이라면 하루가 아니라 온 한해라도 밀림 속의 폭포

특유의 향취에 흠뻑 취하고 싶었다.

 

이곳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백두산 일대의 공기 속에는 건강에 좋은 음이온이 많은데 특히

폭포 주변에 더 많다고 한다.

 

그러면서 백두 폭포 주변에서는 이렇게 사계절의 경치를 한눈에 볼 수도 있지만 매 계절에는

또 나름대로 자기의 특징이 있다는 것이었다.

 

즉 봄철에는 보기 드문 고산지대의 꽃들이 높이 20m나 되는 층암절벽과 주변 능선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여름철에는 짙은 녹음과 함께 새들의 울음소리가 폭포 경치와 잘 어울려

신비경을 펼쳐 놓는다고 한다.

 

단풍이 지는 가을철에는 은빛 고드름이 줄줄이 달려 고산지대의 신비한 경치를 나타내며

겨울철에는 겨울대로 속이 빈 얼음 폭포로 변하여 그 기둥 속으로 물이 장쾌하게 쏟아져 내리는

특이한 경관을 이룬다는 것이었다.

 

어찌 시와 노래가 절로 나오지 않을수 있으랴. 문득 한 곳에서 다 볼 수 있는 백두산의 사계절을

노래한 옛 시구절이 떠올랐다.

 

삼춘에 진달래 보려 약산동대 가는 사람

장하에 더위가 싫어 명사십리 찾는 사람

구추에 단풍 보려 금강산을 톺는 사람

엄동에 설경 보려 삼방계곡 가는 사람

사람들이여

이렇게 쪼각 경치 찾노라 수고 말고

여기 백두산에 한 번 올라

춘하추동 사계절을

한 번에 안아보는 것이 어떠하리오

 

백두 폭포에서 얼마쯤 가노라니 폭포가 또 있었다. 두 개의 폭포가 나란히 놓여 있다고 하여

형제 폭포라고 불리는 폭포였다.

 

형제 폭포를 지나니 우리의 눈앞에 또 하나의 장관이 펼쳐졌다. 도로 양옆으로 산간 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사스레나무 군락이 펼쳐진 것이다.

 

가지를 제가끔 뻗으며 무성한 군락을 이룬 사스레나무림은 나무마다, 구간마다 형형색색,

기기묘묘하여 자기의 독특한 경치를 나타내고 있었다.

 

사스레나무 잎사귀들이 살랑살랑 설레며 마치도 우리 일행을 반겨 정답게 손을 저어주는 것만

같았다. 정말이지 숲의 조화란 미처 가늠할 수가 없었다.

 

매력적인 숲의 경치가 안겨준 여운이 채 가셔지기도 전에 우리의 눈앞에 천군 바위라고

새겨진 표식비가 나졌다.

 

우리는 천군 바위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전망대로 향했다.

천 개가 넘는 바위들이 수십나 되는 가파른 벼랑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곰산 밀영과 선오산 밀영 사이의 10여 리 구간의 가파른 협곡에 백두산에서 뻗은 압록강

상류를 끼고 솟아 있는 그 바위들은 하나와 같이 날카롭고 경사가 급하며 깎아 지른 듯

뾰쪽한 것이 특징이었다.

 

그 담대한 기개는 천 명의 군사를 방불케 하였다. 정예사단의 열병 대오가 서슬푸른 총창을

비껴들고 백두산을 우러러 정열해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일행 중 누군가가 어느 한 바위를 가리키며

참매가 큰 날개를 쭉 펼치고 당장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것 같구만.라고 외치는데

다른 쪽에서는 저기 바위에 사람이 우뚝 서 있어요.라는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듣고 보니 비유들이 신통하였다.

 

천년만년 변함이 없이 오직 백두산을 옹위하여 지심 깊이 뿌리를 박고 모진 풍파를 이겨내며

굳세게 솟아 있는 백두산의 천군바위, 사연 깊은 천군바위를 바라보며 우리는 저 바위들처럼

백두산을 옹위하는 길에서 영원히 한마음 변치 말자고 굳게 약속하였다.

 

거대한 도끼로 내리찍은 듯한 절벽을 감돌기도 하고 약동하는 백두의 정기를 받아 우적우적

키 돋움을 하는 울창한 수림 속을 지나기도 하면서 백두산의 청신하고 상쾌한 정취에 몸도

마음도 한껏 정화되는 우리의 눈앞에 불멸의 글발이 안겨 왔다.

 

백두산은 나의 고향입니다. 김정일

드디어 백두산 밀영 고향 집을 지척에 둔 소백수마을 입구에 들어선 것이다.

 

우리는 구면인 백두산밀영지구 혁명 전적지 관리소 학술 연구원 김성호

동무의 집에서 하루밤 묵게 되었다.

 

수십 년을 이곳에서 일해 온 그는 우리가 찾아온 사연을 알고는 무릎을 철썩 치는 것이었다.

 

 

▲     © 자주일보

 

 

아무렴, 백두산 밀영 고향 집이 자리 잡은 소백수골 경치를 떠나 백두산의 아름다움을

다 보았다고 말할 수 없지요.그는 안주인이 먹음직스럽게 구운 주먹만 한 감자에 소금과 김치

그릇까지 챙겨 우리 앞에 척 꺼내 놓더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유명한 소백수골8경에

대하여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소백수골의 지형상 특징과 동식물들, 천지에 시원을 두고 사시장철 흐르는 소백수에 대한

이야기는 들을수록 흥미진진하였다.천하제일 정일봉과 기묘삼암을 이루는 해돋이 바위와

용마 바위, 장검 바위를 비롯하여 천험의 요새다운 지세를 이루는 산악미, 사시장철 쉼 없이

흐르는 소백수의 계곡미, 이곳 특유의 풍치를 돋구는 수림미 등 소백수골의

경치에 대하여 그는 상세히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수십 년 전 백두산 밀영 고향 집을 찾으시었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백두산 밀영이

자리 잡고 있는 소백수골 안의 풍치가 아주 좋다고, 항일무장투쟁시기 사령부가 자리 잡고

있던 골 안 위치가 아주 좋은 곳이라고 뜨겁게 교시하시었다고 격정에 넘쳐 말하였다

 

 

▲     © 자주일보

 

 

그의 이야기는 혁명의 성산 백두산이 자기의 첫 주인을 소백수골에 처음으로 모시였던 항일전의 그날로

우리를 이끌어 갔다.

 

우리 혁명역사의 갈피에 뜻깊게 새겨진 만단 사연을 길이길이 전하며 역사의 봉우리로 거연히 솟아

빛나는 정일봉과 백두산 밀영 고향 집, 소백수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우며 우리는 밤을 보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우리는 백두산 밀영 고향 집을 향해 떠났다.소백수 물줄기를 따라 걷노라니

야광나무꽃, 물버들꽃, 민들레꽃 등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게 피어나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     © 자주일보

 

 

천연 원시림의 짙은 녹음, 소백수의 유정한 물소리와 조화를 이루며 만발하여 피어난 꽃들을

보노라니 문득 소백수골8경의 하나로 자랑 높은 소백수골에 피어난 서리꽃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백두 광명성을 안아 올린 역사의 그날 만민의 축복인 양 눈부신 신비경을 펼쳤던 서리꽃,

그 서리꽃을 대신하여 지금은 소백수가에 온갖 꽃들이 만발하여 피어나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었다.

 

혹시 저 듬직한 나무 밑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 해방의 역사적 위업을 실현하시려 끊임없는

사색을 이어 가시던 뜻깊은 자리가 아닌지, 저 소백수가의 진대나무 앞은

항일의 여성 영웅 김정숙 어머님께서 봄을 먼저 알리며 피어난 유정한 진달래꽃 향기를 맡으시며

떠나온 고향 땅을 그려보시던 곳은 아닌지

 

이런 생각이 자꾸 갈마들어 소백수골의 나무 한 그루도, 꽃 한 송이도 무심히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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