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 장기수 박종린 선생집 위문 방문

몸도 전혀 가누지를 못해 주위 사람들이 손 발이 되어주어야 한다

김영승 기자 | 기사입력 2020/10/16 [15:57]

비전향 장기수 박종린 선생집 위문 방문

몸도 전혀 가누지를 못해 주위 사람들이 손 발이 되어주어야 한다

김영승 기자 | 입력 : 2020/10/16 [15:57]

비전향 장기수 박종린 선생집 위문

 

▲ 비전향 장기수 박종린 선생은 생전에 그토록 바라던 통일의 날을 보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심만큼 건강이 악화되어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 가셔지지를 않는다.     ©김영승 기자

 

2020년 10월 16일 동암에 살고 있는 박종린 선생 집을 찾아 위문했다. 박종린 선생은 대장암의 악화로 인천 사랑병원에 1개월 동안 입원했다가 3일 전에 퇴원해 집에서 가료 중이다. 사실 병이 나아져서 퇴원한 것이 아니라 병원에 계속 입원해 있어도 별다른 특효약이 없기 때문이다. 상태는 화장실도 스스로 가지 못할 정도로 악화가 되어 주위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앉아 있지도 못하고 누워서만 있기 때문에 병수발을 드는 사람이 손발이 되어주어야 한다.

 

하루에 섭취하는 영양은 약국에서만 파는 “뉴케어“ 한개로 하루를 떼운다. 이젠 편안하게 계시다 가는 길을 만을 보고 있자니 답답하고 가슴이 쓰라릴 뿐이다. 그래도 생존해 있을 때 그렇게도 갈망했던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을까 기다리고 기다렸으나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껏 투지로 버텨오고 있으나 병마는 더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미제보다 악랄한 병마를 극복한다는 것은 요행수만 남아 있을 뿐이라서 분노만 솟구치고 있을 뿐이다. 현재 간병은 보헙공단에서 파견된 요양보호사가 일주일에 5일간 하루 3시간 씩만 친절하게 봉사하고 있다. 나머지 시간은 조카들이 돌보고 있다. 

 

지금 코로나 때문에 위문 방문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으니 혹 위문하실 분은 사전에 전화해보고 결정하기 바란다. 

 

생사를 같이 한 동지의 한사람으로서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다. 이름도 없이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쓰러져 간 동지들을 회고할 때 마지막 한 번은 가는 길에 어떻게 끝맺음을 할 것인가를 자신의 일 처럼 생각하게 한다.

 

마냥 앉아 이야기할 수도 없어 다음 약속을 하면서 발걸음을 내디딜 때 팍팍함을 느끼며 귀로에 올라 기사를 작성하였다. 

 

  © 김영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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