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 장기수들의 묘소 참배 및 곡절 많은 혁명생애에 대하여

조국의 통일과 혁명의 위하면 한 생을 바친 비전향 장기수들의 묘치 참배

김영승 기자 | 기사입력 2020/11/02 [13:12]

비전향 장기수들의 묘소 참배 및 곡절 많은 혁명생애에 대하여

조국의 통일과 혁명의 위하면 한 생을 바친 비전향 장기수들의 묘치 참배

김영승 기자 | 입력 : 2020/11/02 [13:12]

비전향 장기수들의 묘소 참배 및 곡절 많은 혁명생애에 대하여

 

  © 김영승 기자


 

불굴의 애국투사인 김영호 동지를 추모하면서

 

김영호 동지는

1908921일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했다.

19551220일에 소위 국방경비법 32조에 의에 20년 형을 받고 감옥생활을 하였다.

196010월에 감형되어 츨소 2년여를 남기고 있었다.

김영호 동지는 19731017일에 솜이불을 찢어서 길이 80cm의 끈을 만들어 감방 변소 뒤 창살에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김영호 동지는 보안과 간수들의 집단 폭력에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더군다나 혈압이 (130-210)에 이르는 고혈압 환자로서 혈합이 위험한 수치에 이른 환자를 치료하기는 고사하고 전향 강요를 위한 고문과 구타에 살아나갈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9731010일에서 22일까지 자결하기 5일 전 13일에 걸쳐 국군 1730부대에서 심문을 받았다. 김영호 동지는 위장병으로 인해 식기 속에 밥을 짓이겨 밥물을 마시면서 근근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국군 1730부대는 하루가 멀다하고 만기 전에 동지의 정치적 생명을 끊어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태 속에서 자결을 택하여 감옥의 비인간적이고 야수적인 만행으로 인한 학살 기록을 남기었다.

 

김영호 동지는 마지막 자결 직전에 오늘도 당하고 왔다. 이렇게 살아서 무엇을 하겠는가라는 말을 남기고 우리 모두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과거사 위원회에서는 대구 감옥에서 사망한 23명중 9명에 대하여 의사의 사망 소견을 밝히기도 했다. 이중 자결이 6명이며 11명이 암 질환으로 사망하였다. 나머지 6명은 신분증을 찾지 못해 각하 되었다.

 

불굴의 옥중 투사인 김영호 동지시여!

 

조국과 인민을 위한 투쟁의 길에서 얼마나 많은 동지들이 인간 이하의 처우 속에 비전향 말살을 위한 무지막지한 고문과 구타 속에서 희생되었는가를 회고할 때 그들의 만행은 인류역사상 야수보다도 못한 가장 잔인한 대한민국의 감옥임을 만천하에 들어내고 말았다.

 

동지이 흘린 고귀한 피는 우리 후대들의 심장을 들끓게 하고 훨훨 불꽃으로 타오르게 하고 있습니다. 이젠 모든 아픈 시름을 다 내려놓으시고 반미 자주통일의 길 위에 영생하기 바랍니다.

 

2020829일 전국묘소 답사반 일동 드림

 

 

 

송순영 동지를 기리면서

 

 

송순영 동지는 충남 대덕군 동면에서 출생했다.

 

1969년에 소위 국가보안법으로 무기형을 받고 대전, 대구 감옥 등에서 복역했다.

순영 동지는 비전향을 고수하다 1982526일에 대구 감옥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송순영 동지는 비전향 말살 책을 반대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단식으로 전향 강요 중단과 처우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

 

적들은 아프다고 호소해도 치료는 고사하고 이를 빌미로 전향 강요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다 죽게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198218일에 할 수 없이 외부병원의 검진 진료 결과 위암이란 판정을 받고 5개월 후인 526일에 우리 모두의 곁을 떠나 비참한 옥중 학살 기록을 남기었다. 송순영 동지를 맡은 전향담당자는 비전향 악질분자라고 까지 기제 한 것을 과거사 위에서 밝히기도 해 옥중 투사임을 증명 해주었다.

 

불굴의 옥중 투사이신 송순영 동지시여!

 

동지가 가신지 38년이 다 되고 있지만 비전향 말살 책동을 반대하여 선두에서 싸우다 희생된 옥중 투쟁경험은 우리 후세들에게 거울처럼 비쳐주고 있습니다.

 

최후의 승리 그날까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오늘날 반미자주화 투쟁에 훼 불이 되어 모범적인 전형을 심어주고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송순영 동지의 유해는 김영호 동지, 이연송 동지 한태갑 동지들과 함께 오늘날까지 대구 감옥 공동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이젠 모든 아픈 시름을 다 내려놓으시고 평안히 잠드시며 조국통일의 길 위에 영생하기 바랍니다.

 

2020829일 전국묘소 답사반 일동 드림

 

 

 

한태갑 동지를 기리면서

 

한태갑 동지는 1914년 함남도 정평군 주의면에서 출생했다.

 

19611012일에 소위 국가보안법으로 무기형을 받고 복역했다.

 

한태갑 동지 역시 다른 비전향 장기수 동지들과 마찬가지로 비전향 장기수 말살 책을 반대하여 고문 구타를 비일비재하게 당하는 과정에서 혈압이 120-260이 올라가는 중증 고혈압이란 병을 앓고 있는 데다가 전간양이 발작까지 일으키고 입 병사까지 하여 다 죽게 되니 형집행정를 내릴 정도로 임종 직전 상황에 있었다.

 

이러한 상태 속에서도 196758일에서 515일까지 군사 정보부대로부터 무려 18일간이나 정보 심문을 받기도 했다

 

전문의는 비대상성 간경화 증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는데도 전혀 진찰이나 치료조차 해 주지 않고 전향을 강요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한태갑 동지는 드디어 1972515일에 운명하고 마는 아픈 옥중사의 기록을 남기었다.

불굴의 옥중 투사이신 한태갑 동지시여!

 

동지의 옥중 투쟁사는 우리 후세들에게 반면교사가 되어 주고 있으며 마지막 생을 어떻게 마감해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젠 모든 아픈 시름을 다 내려놓으시고 조국통일의 길 위에서 영생하기 바랍니다. 우리 참배단은 옥중동지들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고 길이길이 기억하며 참배할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2020829일 전국 묘소 답사반 일동 드림

 

 

이 연송 동지를 기리면서

 

이연송 동지는 1930년 생이고 무기형을 받고 대구 감옥에서 1972619일에 사망한 기록만이 있을 뿐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다. 이 연송 동지 역시 비전향 장기수로 생을 마감했다.

 

대구교도소 공동묘지에 다른 동지들과 함께 묻혀 있는데 전국 감옥 중에서 유일하게 동지 묘소에 이름(펫말)이 있는 곳은 대구 감옥뿐이다. 이곳 공동묘지에 묻혀 있던 두 동지(최 석기 동지와 손윤규 동지 유골은 인척이 찾아가고 4명의 동지들만 남아 있다. 이외에도 대구 감옥에서 희생된 동지들 유골도 합장묘에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앞으로 이에 대해서도 확인해야 할 사항이다.

 

참고@@

 

1969년에 작고한 손순남, 최종천, 최한무, 하상혁, 황대연 동지들,

1972년에 작고한 고봉률 동지, 한현수 동지들,

1974년에 작고한 김태원 동지들.

1976년에 작고한 정영훈 동지. 1978년에 작고한 박정래 동지.

1980년에 작고한 노천도 동지 1988년에 작고한 신창일 동지 등이다. 이상 참고하기 바랍니다. 다음은 출옥 후 사망한 대구 동지들은 다음에요.

 

  © 김영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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