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운동가 김한덕 선생 추도식

선생의 옹골진 한 생은 오늘을 살며 투쟁하는 후대들에게 커다란 힘의 원동력

김영승 기자자주일보 | 기사입력 2020/11/11 [12:05]

통일운동가 김한덕 선생 추도식

선생의 옹골진 한 생은 오늘을 살며 투쟁하는 후대들에게 커다란 힘의 원동력

김영승 기자자주일보 | 입력 : 2020/11/11 [12:05]

통일운동가 김한덕 선생 추도식

 

  © 김영승 기자

 

2020.11/10 오후 5시 안양장례예식장에서 범민련 주최 아래 김한덕 선생 추모식을 치루었다. 이번 장례식은 코로나 정국에서 방역 수칙을 엄격히 준수하며 지인들, 동지들, 가족 친지들과 함께 조촐하게 치루어졌다.

 

김한덕 선생은 19313/1일에 부산에서 출생했다.

1951년에 동아중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 동국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1956년에 진보당 결성에 비밀당원으로 참여했다.

1960년에 통일 민주청년동맹에 참여하였다.

1961년에는 민족자주통일 경남협의회 조직위원을 맡기도 했다.

19647월에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1년형을 받고 복역하기도 했다.1975년에는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복역하다 198220년으로 감형되어 1225일에 특별사면을 받아 형 집행정지로 출옥했다.

1989년에 민족자주통일 중앙회의 상임의장을 맡고 자주통일운동을 지도했다.

1990년에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부의장까지 맡고 범민족 통일운동을 전개하면서 후대들에게 제 일선 투쟁지도를 물려주고 고문직으로 배후에서 활동하다가 숙환으로 병석에서 요양치료를 받아오던 중 20201110일 애석하게도 우리 모두의 곁을 떠나고 마는 마음 아픈 기록을 남기었다.

 

선생은 2008년에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기도 했으며, 2013년에는 19641차 인혁당 사건도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기도 했었다.

 

통일운동가이신 김한덕 선생이시여!

 

선생의 옹골진 한 생을 회고할 때 청춘시절부터 90에 이르러 임종할 까가지 초지일관 민족자주통일의 한 길에서 바친 고귀한 경험과 교훈은 오늘을 살며 투쟁하는 후대들에게 커다란 힘의 원동력을 불러일으켜 주고 있습니다.

 

선생이 살아생전에 못다 이룬 투쟁의 과제들은 당대에 살아 투쟁하는 후대들이 이어받아 가열찬 투쟁으로 75년째 둥지를 틀고 있는 미제를 몰아내고 반드시 조국의 자주통일을 이룩하고야 말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선생의 영전에 다짐하고 있으니 모든 아픈 시름을 다 내려놓으시고 조국통일의 길 위에 영생하기 바랍니다.

 

오늘 추도식을 마무리하는 마당에 큰 자제인 김범석님은 오늘 바쁘신 데에도 불구하고 많이 오셔서 아버지 마지막 가는 길에 애도를 표시해 주시고 우리 가족들에게 위로해준 데 대하여 너무도 고맙다는 인사말과 함께 아버지께서 살아생전에 남기신 조국통일에 헌신하라! 없는 사람들을 위해 복무하라! 여유 있는 삶을 살기 노력하라!” 등의 말씀을 항상 새기면서 여기 오신 모든 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포부를 다짐하였다. 김한덕 선생! 평안히 잠드시세요.

 

 

20201111일 올림

 

 

  © 김영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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