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하루에 비낀 우리 사회의 참모습

이정섭 기자 | 기사입력 2019/09/17 [15:24]

조선, 하루에 비낀 우리 사회의 참모습

이정섭 기자 | 입력 : 2019/09/17 [15:24]

 

조선, 하루에 비낀 우리 사회의 참모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917일 화요일 '하루에 비낀 우리 사회의 참모습'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는 장기를 잘라내야 하는 엄혹한 상황에서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치료를 받고 회복되었다는 이야기다.

 

부모님이 없었던 학생 환자는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치료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의 무상보건 시책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슬픔과 기쁨, 희망을 주는 아름다운 기사를 통해 우리 사회가 나갈 방향을 숙고해 보자. (편집자 주)

 

▲     ©자주일보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었다.

 

진정한 인민의 사회로서의 우리 사회의 참모습은 모든 사람들이 한집안 식구처럼 서로 돕고 이끌면서 화목하게 살아나가는 데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난 724일 아침 대학에 등교하여 강의받을 준비를 서두르던 평양관광대학 학생 진송미는 갑자기 배를 그러쥐며 쓰러졌다.

 

학급의 학생들과 교원들로부터 송미의 병 상태가 대단히 급할뿐더러 그에게는 부모가 없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대학의 일군은 다급히 말하였다.

 

이 시각부터 우리 모두가 친부모가 되어 그의 건강회복에 마음을 합치자.

 

그리고 나서 일꾼은 관광 안내 학부 부문 청년동맹 위원장 최충일 동무를 송미에게 붙여주며 어느 한 구역 인민병원으로 떠밀었다.

 

얼마 후 그로부터 상급 병원으로 한시바삐 후송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는 그곳 의료 일꾼들의 의향을 전달받은 대학의 일꾼은 이렇게 말하였다.

 

중앙병원의 유능한 의료 일꾼들과 상담하여 환자를 입원시킵시다.

진송미 학생의 친척으로부터 김일성종합대학 평양 의학 대학병원으로 환자를 후송했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일꾼은 즉시 적인 대책을 다시금 세워 주었다.

 

그 후 평양관광대학과 김일성종합대학 평양의학대학의 일꾼들은 진송미의 건강회복에 깊은 관심을 돌렸다.

 

송미는 태어나 몇 달 만에 아버지를 잃고 9년 후에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그가 차에 실려 김일성종합대학 평양 의학 대학병원에 도착하였을 때 병원의 복부 외과 연구실 의료 집단은 수술 조를 긴급히 묻고 필요한 대책을 세웠다.

 

그로부터 얼마 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감동적인 화폭이 펼쳐졌다.

 

긴장한 수술을 진행하던 이곳 의료 일꾼들인 김철준, 서영식 동무의 생각은 복잡했다.

 

환자는 오랫동안 출혈을 하고 있었다. 만일 출혈을 인차 멈추지 못하면 생명이 위험했다.

 

손쉽게 어느 한 장기를 절제하여 봉합하면 순간에 지혈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환자의 앞으로의 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생명이 기본이라며 진송미 학생의 친척들이 그 방법을 택할 것을 요구하였지만 실장 강성웅 동무를 비롯한 이곳 의료 일꾼들은 그날 저녁 다른 중앙병원 의료 일꾼들과의 연계 밑에 끝끝내 해당 장기를 절제하지 않으면서 수술을 성과적으로 진행하였다.

 

 

우리는 여기에 하나의 감동 깊은 이야기를 더 전한다.

 

수술이 예상외로 어려워지고 있던 그때 환자의 상태는 김일성종합대학 평양의학대학과 평양관광대학의 일꾼들에게 수시로 통보되었다.

 

부모 없는 여학생의 건강이 걱정되어 바쁜 일을 뒤로 미루고 병원의 의료집단과 전화 연계를 자주 하며 적극 도와 나선 두 대학 일꾼들의 소행은 그날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었다.

 

그리고 환자가 출혈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평양관광대학의 교원 전남철 동무와 환자와 같이 공부하는 주현철 동무를 비롯한 학급의 학생들, 몸이 불편하여 어느 한 병원으로 가던 걸음을 되돌려 뛰어온 환자의 담임선생인 강좌장 리형찬 동무의 소행도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우리와 만난 환자의 친척의 말에 의하면 진송미 학생이 병원으로 실려 왔을 때 올해 83살 난 그의 할아버지도 병원에 입원해 있어 송미의 곁을 지켜줄 수 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김일성종합대학 평양의학대학과 평양관광대학의 일꾼들은 물론 병원의 의료집단은 온종일 성의를 다하여 송미를 소생시켰다.

 

그날 저녁 수술이 끝난 후 환자의 친척은 이렇게 마음속 격정을 터치였다.

 

다른 나라 같았으면 송미의 생은 꺼져 버렸을 것이라고, 그의 보호자인 할아버지는 의식이 혼미한 상태였고 그의 할머니는 어찌할 방도를 몰라 그냥 울고만 있었다고, 만일 친혈육의 정을 다한 이렇듯 고마운 사람들이 없었다면 평범한 가정의 대학생인 송미가 두 번 다시 이 땅에 태여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송미는 부모 없는 아이가 결코 아니라고, 송미에게는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동지를 친 어버이로 모시고 사는 화목한 대가정의 식솔들이 있다고

* *

그때로부터 수십 일이 흘러 진송미 동무는 건강한 몸으로 퇴원하였다.

 

그 나날 환자의 건강회복을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인 병원의 복부 외과 연구실 의료 집단과 귀한 보약제들을 들고 자주 찾아온 평양 관광대학 관광 지구 안내학부 교육자들과 대학의 청년동맹 일꾼들 그리고 이곳 대학생들의 소행을 우리는 다 전하지 못한다.

 

그렇다.

우리는 지난 724일에 펼쳐진 하나의 화폭을 통해서도 남이 없는 사회, 서로서로 혈육의 정으로 이어진 화목하고 뜨거운 우리 사회의 참모습을 다시금 안아 보았다.

  • 도배방지 이미지

조선 외무성 담화 '미국 태도에 대화 막 내릴 수도'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