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투사의 덕유산 전적지 종주

김영승 종군기자 | 기사입력 2019/10/07 [16:13]

혁명투사의 덕유산 전적지 종주

김영승 종군기자 | 입력 : 2019/10/07 [16:13]

 

덕유산 전적지 종주

 

  © 자주일보

 

 

덕유산은 백두대간의 한 자락이며 전쟁 때 치열한 유격전이 펼처진 전적지 중의 하나이다.

 

덕유산의 망봉에서 전북도당 위원장 방준표 동지가 희생되고 덕유산 황전골에서 경남도당 부위원장 박찬봉 동지가 희생되는 등 수많은 동지들이 미제를 구축하기 위한 빨찌산 투쟁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 전적지 중의 하나이고 북쪽으로 통하고 이현상 남부군이 내려오는 통로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덕유산은 전북과 경남을 대간 능선으로 가리기 때문에 전북유격대와 경남유격대가 때론 합동작전도 펼쳤으며 각기 지역에서 투쟁하다가 일시적 후퇴 시에 서로가 넘나들면서 투쟁했던 유리한 지형 지세를 활용하는 유격 전술을 펼쳤던 산이다.

 

우리 기행단은 덕유산에서 임진 조국 전쟁 갑오농민전쟁 의병투쟁 항일무장투쟁 조국 전쟁 시기 미제와 투쟁하다 희생된 수만은 열사들을 생각하면서 기행 했다.

 

덕유산 향적봉(상봉)은 해발 1614m 고지다.

진달래산천 기행단은 60령 고개에서 10/4일 오전 11시경에 출발하여 할미봉을 거처 서봉에 이르려 점심을 들었다.

 

할미봉은 전쟁 때 전북 유격들이 일시적 해방구를 쓰고 있을 때 유격대 사령부가 전투를 지휘했던 사령고지라고도 불린다. 힘겹게 올라 주위에 펼쳐진 지형 지세를 살펴보니 과연 전략 고지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기행단은 할미봉에서 서봉(장수 덕유산이라고도 함)을 향해 오르는데 중간중간에 칼날 바위와 낭떨어지에 계단을 설치해 놓았는데 이번 폭우였는지 알 수 없으나 부서진 곳이 많아 아찔아찔하게 온 힘을 다하여 무사히 통과하기도 했다.

 

드디어 서봉 밑에 샘물이 나는 곳도 발견하여 타는 목을 적시고 점심도 들었다.

서봉에 오르니 해는 서산에 지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밤 행군이 시작되었다.

 

시간은 오후 7시다. 원래 계획은 남덕유산은 거쳐 가기로 되었으나 시간상 피로 상 접고 삿갓봉 대피소로 직행하기 시작했다. 길은 오르내리는 데 험한 밤 행군 길이었다.

 

밤 산행이 아니기 때문에 랜턴도 모두 준비하지도 안않다, 그러나 일부 몇 회원은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 준비한 회원도 있었다.

 

1박 지역은 삿갓봉 대피소이다. 일직 도착한 회원은 밤 행군 3시간여 만에 도착했고 맨 끝에 도착한 회원은 밤 11시 넘어 도착했다.

 

기행단은 모두 험한 덕유산 밤 행군 길을 무사히 삿갓봉 대피소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10/5일 아침을 라면으로 들고 7시경에 덕유산 상봉(1614m)을 향해 출발했다.

회원 중 2명은 전날 기행에 피로에 지쳐 중도 포기하고 하산했다.

나머지 회원들은 상봉을 향해 달렸다.

 

무룡산을 동업령 대기봉 백암봉(여기서 백두대간의 갈림길이다)에 올라 한숨을 돌리고 중봉에 올랐다

여기서 집단 사진 찍고 향적봉 대피소에 이르렸다.

 

상봉까지는 100m 남았다고 이정표는 가르키고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해 드디어 상봉에 올랐다. 덕유산 종주 목표인 상봉을 점령한 기쁨은 이루말 할 수 없이 기뻤다.

 

이젠 하산 길만 남았는데 시간상 피로에 지친 몸 형편상 일정을 변경하여 설천봉으로 직행하여 케이불카를 타고 수월하게 무사히 하산했다. 뒤풀이에서 타는 목을 적시고 다음 기행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남을 약속하면서 귀가 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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