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방문기 2019년 5차<1>

김정희 파리특파원 | 기사입력 2019/06/20 [11:13]

조선 방문기 2019년 5차<1>

김정희 파리특파원 | 입력 : 2019/06/20 [11:13]

 

조선 방문기 20195<1>

 

2018.4.27

이 숫자는 우리의 갇혀 있는 관성적 사고를 깬 날짜이다. 어떤 사람은 기적이 일어난 날이라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마치 장난삼아 넘나든 것처럼 보였던, DMZ의 군사분계선인, 시멘트로 만들어진 10센티의 높이도 되지 는 턱을 두 손을 잡고 한쪽으로 왔다가 다른 쪽으로 갔다가 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았던 장벽을 그리도 쉽게 넘어 오간 것을 보여주었다. 이순간이 남쪽이건 북쪽이건 해외 사는 동포 건 얼마나 큰 감동과 감격을 주었는가! 우리민족에게 신선하면서도 상상을 불허했던 남북이 융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그런 날이 가 까와 온다는 예고의 날이었다.

 

이날 이후부터는 나는 꿈을 꿀 수 있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금지곡으로 등록했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다시 당당하게 부를 수 있었고, 지금까지 우리를 세뇌해 민족을 주적으로 만든 세력들이 아직도 살아서 민족끼리 긴장과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제의 식민지 통치 속 온갖 고통 속에서 독립투쟁을 하신 조상들이 남겨준 땅을 온전히 복원하여 우리 미래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지금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가 해야 하는 의무사항이 아닐까 ? 그러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길을 찾는 여정이다.

나의 조선 바로 알기 방문 여정은 이 숫자를 계기로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또 더 많은 용기를 정신적으로 부여 받게 되었다.

 

분단국가를 조국으로 갖는 해외동포의 분노와 섭섭함

해외에 나가 살면 조국이 그리워 해외생활이 외로울 것이라고 동정 겸 안타까움을 전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나는 해외에 살면서 워낙 바쁘게 살다 보니 그리고 남한도 자주 방문하니 그런 감정적인 외로움을 느낀 적이 별로 기억에 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분단된 민족의 한 명인 것에 대한 분노와 섭섭함은 해외에서 겪은 것이 아니고 남쪽과 조선을 방문하면서 더 겪게 되었다.

 

남쪽에서는 내가 본 북에 대해, 예를 들어 국가에서 육아원에 우선적으로 지원하고, 학교 학생들을 애정을 갖고 관찰하는 교사들이 아이들의 특기를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무료로 선택할 수 있는 특별활동을 할 수 있다 든 지, 혹은 그곳에서 건설한 건축물들이 시대에 앞서는 건축물의 아름다운 곡선에 대한 평가나,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면 집을 담당 관공서에 신청하면 기다리는 시간이 있지만 살림집이 나온다든가 하는 평범한 그곳의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면 내가 외국인 국적을 갖을 지라도 남한에서는 고무 찬양죄로 고발 혹은 고소를 당하거나 그 결과로 법정에 나가야 하고, 엄청난 벌금이나 추방 혹은 감옥살이 까지 할 수 있다는 국가보안법 공포 속에서, 나 스스로가 조선에 대해 진실이 아닌 거짓말을 생산하는, 양심이 없는, 생각하지 않는 기계가 되어야 하니, 이런 행동을 강요하는 제도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쪽에서는 사진 찍는 것이 허용되지만, 여기저기 관광을 할 때 사진을 조금이라도 자주 찍거나 많이 찍는다고 생각이 들면 안내원이 무엇 때문에 많이 찍는 것인지 누구에게 보여줄 것인지 하고 물으면서 몇몇 동포방문객들이 사진을 찍는 것을 허용하니 악의적으로 외부에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고 혹시 미국이나 남한의 간첩질로 사진을 찍어 가서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의 말과 눈초리를 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까만 머리의 CIA앞잡이들이 와서 북의 이미지를 악마화 하기위해 조국에 대한 배신행위를 하는 것을 언론을 통해 들었지만 정작 이런 말을 들으니 섭섭함이 느껴진다. 우리는 우리끼리도 진정성을 보이는 것이 이렇게 어렵구나! 아무리 진정성을 갖아도 의심을 받게 되는 것은 바로 분단된 민족의 땅에서 태어난 대가를 치루는 것이 아닐까 ?

 

북을 처음 방문하게 된 동기는 여러 가지 있지만 우선적으로는 개인적인 반항이 섞인 호기심이었다. 외국에서 30년 이상을 살면서 민족이 두개의 국가로 나누어져 있는 현실이 마치 변할 수 없는 원칙인 것처럼, 나도 더 많이 혹은 깊이 알 필요가 없는 것처럼 살았었다.

 

 

그러나 미국군인들이 남측군인들과 한미연합 합동군사훈련이 있을 기간마다 즉 매년 긴 겨울이 지나고 아름다운 색채와 따사로운 햇살의 봄이 시작할 때에 북에서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이 북측을 공격 침공하기위한 훈련이라고 대응을 하면서, 국제언론과 여론이 일년내내 한반도(조선반도)에 관한 정치적 기사는 없다가 갑자기 남과 북, 북과 미국의 긴장과 갈등을 대서특필하기 시작하고 초보적인 겉핥기식의 남북(북 남)-조미관계를 언급하는 것을 수십년을 읽고 티브이를 통해 보았다.

▲ 우리 조국의 아름다운 강산     © 자주일보

 

▲ 오염되지 않은 청정 음식     © 자주일보

 

▲ 음식점 가는 곳 마다 유기농 무공해여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 자주일보



언론이 전하는 단편 적인 기사들도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우리민족의 문제를 내 시각으로 판단하고 싶은 여정 시작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에 대해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어나 프랑스어로 된 신문들을 읽어도 미국, 영국, 프랑스에서 나오는 언론기사를 읽어도 나에게 시원한 대답을 주는 기사도 없고 책들도 별로 신통한 내용이 없었다. 결국 남과 북의 관계 북과 미국과의 관계는 한반도(조선반도)의 역사와 국제 정치적 관계에서 얽힌 아주 복잡한 강대국과 약소국의 대결인 것 이다.

 

그러면서 내가 받은 역사교육과 사회교육이 얼마나 큰 오류로 조작과 거짓으로 설계된 체제 속에서 받았는지를 깨달으면서 나를 농락하고 있는 체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민주주의도 아니고 방임적 자본주의의 가 아닌 지배자들과 피지배자들의 관계인 것이다.

 

아무튼 이번 방북의 시작도 중국 베이징을 거쳐 가게 되었다. 베이징 공항에 내리면서 시내로 가는 고속도로변에 심어 놓은 장미꽃들이 벌써 만개를 하고 있었다. 베이징에서는 가는 곳곳마다 도로변에 심어 놓은 빨강, 분홍, 노란, 주황, 연보라, 흰색의 장미꽃들이 큰 꽃송이로 소담스럽게 피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베이징에는 연녹색들의 큰 나무들과 작은 가지의 나무들이 많아 베이징이 환경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 곧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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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 백두산 정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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