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10월 민주항쟁, 40주년 보도

민병수 기자 | 기사입력 2019/10/16 [07:09]

조선,10월 민주항쟁, 40주년 보도

민병수 기자 | 입력 : 2019/10/16 [07:09]

 10월 민주항쟁, 40주년 

 

  © 자주일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기관지인 우리민족끼리는 부마(부산 마산) 항쟁으로 불리는 10월 민주항쟁을 되새겨 보는 기사를 16일 보도했다.

 

박정희 군사독재와 유신 통치를 끝장내기 위해 일어났던 10월 민주항쟁을 결코 잊을 수가 없으며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 보수패당의 악정을 끝장내기 위한 투쟁에 과감히 떨쳐 나서야 할 것이다. <편집자 주>

 

10월 민주항쟁은 197910월 남조선 청년 학생들과 인민들이 유신파쇼 통치를 반대하며 민주주의를 요구하여 일으킨 반파쇼 민주화 투쟁이다.

 

이 투쟁은 19799월부터 일어난 남조선 청년 학생들과 인민들의 투쟁의 연속이었다.

 

9월에 일어난 그들의 투쟁은 야만적인 유신체제 밑에서 더는 살래야 살 수 없게 된 남조선 인민들이 앉아서 죽기보다 일어나 싸우기를 결심하고 떨쳐 나선 대중적 항쟁의 서막으로 되었다.

 

9월 초에 남조선의 강원대학교 학생들과 대구의 대학생들의 투쟁으로 시작된 청년 학생들의 투쟁은 한 달 동안 끊임없이 벌어졌다.

 

서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교 학생들은 민주구국선언문, 경제 시국선언, 학원 민주선언, 민족민주선언, 이화 민주선언등을 발표하거나 각종 반정부삐라를 뿌리면서 투쟁을 계속하였다.

 

1015일 부산대학교 학생들은 반정부집회를 열고 독재정권퇴진, 《〈유신헌법철페, 학원의 민주화, 언론의 자유 보장등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민주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이 대학 학생 5 ,000여 명은 16일 또다시 반정부집회를 가지고 이어 가두 시위 투쟁에로 넘어갔다. 이 투쟁은 10월 민주항쟁의 발단으로 되었다.

 

부산에서의 반정부투쟁은 1018일 마산으로 확대되었다.

 

부산과 마산에서 타오른 투쟁의 불길은 각지에 전파되어 서울의 서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대구의 계명대학교, 광주의 전남대학교를 비롯한 청주, 울산, 진주 등지의 청년 학생들을 투쟁에 일떠서도록 하였다.

 

사태를 수습할 수 없다는 것을 간파한 미제는 앞잡이들의 내부갈등을 이용하여 1026유신독재자 박정희를 사살하게 하였다.

 

10월 민주항쟁은 파쇼테러 통치를 짓부수고 사회정치 생활의 민주화를 실현하며 노예적 굴종을 반대하고 인간의 존엄과 자주권을 되찾으려는 남조선 인민들의 열렬한 지향의 표시인 동시에 민심을 거스르는 반역 무리는 비참한 종말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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