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아이들의 현실로 미래를 볼 수 있다

이정섭 기자 | 기사입력 2019/10/18 [05:50]

조선, 아이들의 현실로 미래를 볼 수 있다

이정섭 기자 | 입력 : 2019/10/18 [05:50]

 조선, 아이들의 현실로 미래를 볼 수 있는 판이한 두현상

 

  © 자주일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기관지인 우리민족끼리는 18'어린이들로 본 판이한 두 사회의 미래상'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최근 북녘에서는 세쌍둥이가 태어나는 경시를 맞이했다고 한다.

 

원래 세쌍둥이가 태어나면 집안이 망할 징조라며 버리는 악습이 있었는데 김일성 주석이 그런 악습을 고치고 아이들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도록 오히려 세쌍둥이가 태어나면 나라가 흥할 징조라며 나라는 물론 온 사회가 축복해 주고 보살펴주는 전통이 확립 되었다고 한다.

 

최근 남한과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미국과 일본, 유럽 등에서는 문란한 성 문제로 태어난 아기들이 쓰레기통에 버려지거나 세상을 보기도 전에 숨을 거두는 슬픈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민족끼리 기사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사색해 보자. <편집자 주>

 

 

 

최근 공화국의 평양산원에서 세쌍둥이가 연이어 태어난 소식이 전해져 온 나라 인민들에게 기쁨을 더해주고 있다.

 

지난 828일 평양시 동대원구역의 권미화 여성이 귀여운 딸 세쌍둥이를 낳았다.

 

그 다음 날인 829일에는 함경남도 단천시의 김혜영 여성이 아들 세쌍둥이를, 95일에는 강원도 평강군의 박명실 여성이 딸 세쌍둥이를 낳았다.

 

입원한 첫날부터 온갖 정성을 다하여 보살펴준 의사, 간호원들의 따뜻한 환송을 받으며 행복의 요람을 나서는 아기들의 귀여운 모습에는 어린이들을 희망과 미래의 전부로 여기고 아이들의 밝은 앞날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는 어머니 조선로동당의 열화와 같은 정과 사랑이 비껴있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었다.

우리 인민은 사회주의제도가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 것을 실생활을 통하여 깊이 체험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을 억만금의 금은보화에도 비길 수 없는 귀중한 보배로 내세우고 후대들을 위해서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와야 한다는 우리 당의 미래사랑이 있어 누구나 태어나면 애기 궁전이, 자라나면 배움의 궁전, 소년단야영소 등이 어서 오라 문을 활짝 열고 손 저어 부른다.

 

하기에 언제인가 외국의 한 언론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노래 소리로 떠들썩한 송도원 국제소년단야영소를 소개하면서 자식들을 조선으로 떠나보내라고 권고하고 싶다, 이곳은 아이들의 오아시스와 같다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동심에는 진실만이 비끼는 법이다.

 

외국의 언론이 전한 소식은 반공화국 악선전에 찌들어진 서방세계로 하여금 아이들의 왕국인 조선의 현실에 대하여, 사회주의제도의 밝은 미래에 대하여 생동한 화폭으로 엿보게 하는 또 하나의 계기로 되었다.

 

어린이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가. 어린이들을 어떻게 키우는가. 이것은 비단 한 가정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해당 나라와 민족 나아가서 인류의 발전과 미래와 직결되어 있다. 그래서 아이들의 얼굴에 당대의 사회상과 미래가 비낀다고 말한다.

 

언제인가 서방의 어느 한 대도시에서 살고 있는 10살 안팎의 약 900명 어린이들이 이 도시 시장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다.

 

자기 또래들이 매일같이 총에 맞아 죽고 납치당하는데 기겁을 한 이 어린것들의 편지내용은 자기들을 총구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하며 가족 친척들이 죽지 않았는가 매일, 매시 전화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주며 마음 편히 밖에서 놀거나 옆집에 갈 수 있게 경찰들을 늘여 달라는 것 등이였다.

 

편지에서 7살짜리 아이는 이 악마의 현실이 막 무서워요. 제발 살려주세요.라고 애원하였다.

 

이 도시의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의 울부짖음은 자본주의가 온몸에 단장하고 있는 문명의 너울을 벗기고 그 썩은 내부를 적나라하게 고발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온갖 사회악에 짓눌려 망울 채 시들어가는 자본주의 나라 어린이들의 비참한 처지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어머니란 이름은 이 세상에서 인자함과 자애로움의 대명사이다. 그래서 그 품을 가장 따뜻한 품이라고 노래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에서 어머니는 더 이상 꿈속에서도 불러 찾는 정다운 부름이 아니다.

 

온갖 패륜 패덕이 범람하는 일본 사회에서 철부지 어린애들이 교양이라는 미명 하에 고통 속에 죽어야 하고 부모들의 동물적 쾌락의 대상으로 숨이 지는 현상들이 부지기수이다.

 

부부가 3살 난 아들을 토끼장에서 키우다 수건을 물려 질식시켜 죽인 사건도 이 사회에서 있은 일이다.

 

아이를 빵 구이로에 넣고 뜨거운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인가를 시험해보려 했다고 거리낌없이 뇌까리고 2살 난 아이를 끓는 물 속에 잡아넣고는 희극배우의 모습을 연상해보며 쾌락을 느끼는 이러한 변태적인 인간들을 어떻게 어머니란 신성한 부름으로 칭할 수 있단 말인가.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이러한 범죄 행위들이 묵인되고 있는 점이다.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어린이들을 타락으로 떠미는 대중선전이 공공연히 진행되고 있다.

 

자본주의 나라의 어느 한 TV 회사에서 방영하는 교육편집물 프로그램을 놓고 보아도 10대의 어린이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애정 영화를 대대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10~12살 어린이 교육프로그램이라는 데서는 12살 난 어린이와 어른과의 상담시간이라는 것을 만들어놓고 10대 엄마들이 지켜야 할 위생상식등을 해설하면서 청소년들의 나이와 취미는 안중에도 없이 색정과 타락을 강요하고 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아이들은 희망과 미래의 상징이다. 미래를 어지럽히는 것만큼 미련하고 무서운 죄악은 없다.

 

사람이 타락하면 다시 소생하기 힘들고 사회가 타락하면 나라가 쇠퇴하며 망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아이들의 행복하고 명랑한 웃음소리, 노래 소리 높이 울리는 우리의 사회주의사회와 그와는 반대로 아이들이 불행에 울부짖고 타락으로 치닫는 자본주의사회상에서 판이한 두 사회의 미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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