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산?

이정섭 기자 | 기사입력 2019/06/25 [16:49]

황금산?

이정섭 기자 | 입력 : 2019/06/25 [16:49]

 

황금산은 이렇게 불려 지게 됐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낸 역사의 땅 건설과 창조의 땅의 전설 같은 실화가 있다.

로동신문 24일자 기사를 통해 창성 땅이 어떻게 주민들은 물론 북녘동포들에게 귀감이 되었는가를 독자들과 함께 들어 보기로 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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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성군 기념비     © 자주일보



영광의 땅 창성군에 새겨진 절세위인들의 불멸의 자욱을 따라서 ()

 

 

 

우리를 태운 버스는 높은 령을 굽이굽이 돌아내려 어느덧 영주천 기슭에 펼쳐진 읍거리에 접어 들었다. 바로 그곳에서부터 산중도시를 방불케 하는 창성군에 대한 우리의 취재가 시작 되였다.

 

년전 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몸소 돌아본 거리,

 

넓고 시원하게 뻗어간 도로며 키 돋움 하듯 즐비하게 늘어선 살림집들과 공공건물들

 

민족적 색채가 짙은 창성각과 창성국수집은 물론 우리 원수님의 은정속에 새로 일떠선 은덕원은 그 외형부터가 도시사람들도 부러워할 정도였다.

 

얼마나 변모된 창성군인가.

 

황금산! 재도자드의 열화 같은 인민사랑과 숭고한 조국애, 불면불휴의 노고가 어려 있는 이 말과 더불어 창성의 전변사는 얼마나 격동적으로 흘러 왔던가.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뀔수록 높이 메아리치는 황금산서사시의 한 구절 이나마 목청껏 외치고 싶어 기행 길에 나선 우리였다.

 

위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자은 다음과 같이 교시하였다.

 

창성 땅에 황금산의 새 사역를 펼쳐주신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은 황금산탑과 더불어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 것입니다.

 

영주천을 건너서니 높고 가파로운 문지령이 눈앞을 가리웠다. 군소재지와 서쪽 약수리와의 경계에 문지방처럼 놓여있는 이 령의 정점에 황금산탑이 솟아있다고 우리와 동행한 군 산림 경영소 지배인이 말하였다.

 

문지령, 오랜 세월 무서운 가난과 고생을 숙명으로 알아온 산골사람들에게 복을 주려 수령님께서 이 령을 넘고 넘으며 황금산역사의 연륜을 아로 새겼으니 문지령 이야말로 창성이 맞이한 천지개벽의 증견자가 아니겠는가. 하 많은 사연을 안고 반기는 문지령의 숲길에 성큼 들어선 우리의 마음은 어느 사이에 멀리 흘러간 수십년 전 그 나날에 가 닿았다. 령길을 톺으며 지배인이 시작한 이야기가 전후시기인 1955)년에로 우리를 이끌었던 것이다.

 

김일성주석은 그해에도 우리 고장에 왔습니다. 주석님이 창성사람들의 생활향상을 위해 마음 쓴 이야기로 말하면 이 문지령의 초목을 다 합한 것보다 더 많습니다. 하나하나가 다 눈물을 자아 내지요. 어느 리 상점 매대에 놓인 산 복숭아를 보고도 산골농민들의 부수입을 높일 생각을 하고 한 농가마당에 널어놓은 도토리를 보고도 이 고장에서 산열매를 따서 팔아도 수입이 대단하겠다고 하며 속구구도 해보았습니다. 창성의 산들을 인민생활에 이바지하는 보물산, 황금산이 되게 하려고 산에도 자주 올랐습니다.

 

어느 일요일 오후에는 일꾼들도 모르게 아득한 벼랑 턱에 올랐습니다. 밤알같이 큰 도토리며 머루, 다래 그리고 여러 가지 풀잎들을 안고 내려오는 방금 전에 올랐던 곳을 가리키며 저기 벼랑턱밑에만 해도 이렇게 여러 가지 산열매들과 집짐승들이 잘 먹는 풀들이 많더라고 하면서 기뻐했습니다.

 

하루는 김일성 주석이 오랫동안 산 짐승 잡이와 약초 캐기를 해온 한 노인과 함께 이른 새벽 또다시 산에 올랐다.험준한 능선과 깊은 골짜기를 톺으시며 머루, 다래덩굴도 만져보시고 싸리밭 속에 한참이나 멈추어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머루 따는 아이들이나 도토리 줍는 인여들을 만나면 얼마나 땄는가, 몇 시쯤부터 주었는가 묻고 머루는 어느 골짜기에 많으니 그쪽으로 가보라, 도토리는 어느 바위 웃 쪽에 가면 하루에 10가마니도 주을 수 있겠더라고 일러도 주었다.

 

우거진 덤불을 헤치기도 하시고 앞을 가리는 나무가지를 휘여 가르며 이끼 덮인 미끄러운 산 비탈길을 톺아 오른 주석...

 

새벽이슬을 차시며 몸소 걸으신 험한 산골길, 초신을 신으면 먼 길을 갈 때도 발이 부르트지 않는다고 하시며 초신을 신고 걸으신 그 길은 이 고장 토배기들도 밟아보지 못한 감탕 돌밭 길이였다. 그렇게 노고를 겪으며 찾은 곳마다에서 농민들과 무릎을 마주하시고 산골사람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도를 구수하게 말해주었다.

 

산을 잘 이용하여 양, 염소, 소와 같은 풀먹는 집짐승들을 많이 기를 데 대한 문제, 산열매를 많이 따고 산나물도 많이 뜯고 싸리를 베여다 광주리와 다래끼, 의자도 결으며 좋은 나무를 골라 망치자루, 도끼자루, 곡괭이자루 등을 만들며 물고기도 잡고 과일 나무도 심고 누에치기도 많이 할 데 대한 문제

 

참으로 막혔던 가슴이 탁 트이고 앞길이 환히 내다보이게 하는 가르침 이였다.

 

이 산골에 인적이 깃들기 시작한 이래 대를 물려 살아오면서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이 산이였지만 그 산을 이용하여 잘살아보자는 생각은 누구도 해본 일이 없었 습니다. 오히려 해방 전에 이 고장 사람들은 대대로 굶주리고 헐벗고 천대받으며 사는 것이 모두 산 때문이라고 한탄했으며 그 산을 볼 때면 조상들까지 원망했었습니다.

 

지배인은 목멘 어조로 이렇게 말하였다.

 

참으로 김일성 주석의 한평생은 인민을 위해 세월의 눈비를 다 맞으며 걸으신 위대한 사랑의 길 이였다. 인민을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살게 하려는 김일성 주석은 심혈과 노고를 바치어 낸 첫길이 이 나라 방방곡곡에 얼마나 많은가. 그날의 길을 마음속으로 따르느라니 김일성 주석의 천만고생이 너무도 눈물겨워 눈앞이 뿌잇 해졌다.

 

스무해 긴긴 세월 눈보라 만리, 혈전 만리를 헤치고 가열한 전화의 불길 속을 뚫고 오고도 인민의 행복을 위해 그렇듯 험한 길을 또다시 걸은 주석님,

 

눈앞에 둔 복구건설, 사회주의건설 때문에 그처럼 바쁘신 우리 수령님께서 산골 군 인민들이 벌방 못지않게 살게 하려고 어뜩 새벽부터 산판을 톺았으니 인민의 행복을 위한 김일성 주석의 노고는 끝이 없었다.

 

바로 김일성 주석이 걸은 그 새벽길을 따라 산골사람들에게 복리를 안겨줄 황금산이 창성사람들의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어느새 영마루에 다 달았는지 우리의 눈에 사연도 깊은 세 글자 황금산을 새겨안고 서있는 역사의 기념비가 안겨들었다.

 

6년전 우리 창성군을 찾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여기에 차를 세우고 황금산탑을 한참이나 바라보았습니다.

 

지배인의 말을 들으며 우리는 탑에 새겨진 주석님과 장군님의 교시를 한자 한자 읽어 나갔다.그럴 수록 뜻 깊은 교시들을 자자구구 더듬으시며 뜨거운 감회 속에 선대 지도자들과 마음속대화를 나누었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영상이 안겨와 치미는 격정을 금할 수 없었다.

 

척박하고 궁벽하기 그지없던 창성 땅에 행복과 번영을 안아오려 우리 주석님 이 령은 몇 십번이나 넘었고 사방으로 연연히 이어진 창성의 골마다, 능선마다에 흘린 땀은 또 얼마였던가.

 

정녕 창성의 황금산들은 우리 김일성 주석의 황금산이라고, 거기에 주렁진 열매들은 우리 수령님의 가슴치는 노고와 헌신의 결정체라고 하면서 지배인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55월 어느 날 성골령을 넘던 주석은 산열매를 힘겹게 이고지고 삭주 시장으로 가는 창성 여인들을 보고 차를 멈추었다.

 

광주리며 베자루에 넣은 것을 손수 만져본 주석은 팔 데가 없어서 이렇게 힘들게 이고 가누만라고 하고는 늦기 전에 빨리 가서 장을 보라고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 그러고는 깊은 생각에 잠겨 바람 부는 영길에 오래도록 섰다.

 

여인들의 모습이 사라진 고개 길을 이윽토록 바라보는 김일성 주석의 심중에 한없이 무겁게 실리였던 광주리와 베자루들,

 

그 후 산골농민들이 부수입을 많이 얻고 여성들이 무거운 짐을 이고 영길을 넘나드는 일이 없도록 산열매를 상업망에서 직접 사주는 수매체계가 세워 졌다. 그리고 1958월에 열린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는 지방산업공장을 대대적으로 건설할 데 대한 방침이 제시 되었다. 그것은 언제나 인민들의 생활의 한복판에 계시며 인민들의 소박한 말과 평범한 생활 속에서 인민을 위한 정책의 실마리를 끌어내고 인민의 이익에 맞는 정치를 펴나가는 김일성 주석 만이 내 놓을 수 있는 시책 이였다.

 

온 나라에 소문난 창성식료공장도 그때 생겨났다. 김일성 주석은 창성식료공장에서 세세연연 원료걱정을 모르게 하시려 회령특산 백살구 나무를 몸소 심어 가꾸며 창성 땅에 풍토 순화시켜주었고 군안의 농촌마을들을 찾으시면서 재배방법도 일일이 가르쳐 주었다.

 

인민에 대한 김일성 주석의 그런 지극한 사랑 속에 늘어난 황금산의 보물이 어찌 백살구 뿐이겠는가. 창성군의 옥포리와 금야리에 가면 양, 염소가 떼 지어 흐르고 산들에 조성된 원료림에 튼튼히 의거하고 있는 지방 산업공장들은 군안의 인민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고 있다.지난 날에는 산에 흔하지만 산골 여인들의 용돈 감으로도 시원치 않다고 했던 도토리, 돌배가 이름난 창성 술이 되고 찔광이, 산딸기, 머루, 다래 등이 창성의 맛좋은 단졸임, 단묵이 되여 이 고장 사람들의 행복을 더해주게 된것도 다 우리 수령님의 구상과 로고의 덕이다.

 

황금산의 새 역사는 바로 그렇게 시작었다. 지방원료에 의거하여 지방경제를 발전시킬 데 대한 당 정책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힘 있게 구가하는 지난해와 또 다르게 창성이 변했다는 행복의 노래도 산나물을 찾아 벼랑길을 톺고 산딸기 밭을 찾아 골짜기의 칡넝쿨을 헤치며 우리 주석님이 걸은 그 길에서 첫 가락을 뗐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자그마한 접시에 담아 돌배와 잣밖에 올리지 못했던 창성군인민들에게 황금산, 보물산을 안겨주신 어버이수령님의 하늘같은 은덕을 영원히 전해가자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산림을 가꾸는데 한생을 고스란히 묻어가는 군산림 경영소 지배인과 같은 이 고장의 수많은 사람들의 고귀한 정신세계도 다름아닌 그 길에 뿌리를 두었다.

 

산천도 사람들도 자랑거리인 창성,

 

우리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 두메산골군의 산림을 본보기로 하여 나라의 모든 산을 황금산, 보물산으로 꾸리실 원대한 구상을 펼치시고 노고를 바치 었기에 창성, 이 고장은 온 나라에 또다시 큰 소문을 내게 된 것이 아니랴.

 

문지령을 내리는 사이에 저녁노을은 어느새 주위를 온통 금빛으로 단장시켜 놓았다.황금산의 자태를 더욱 눈부시게 하는 그 빛은 온 강산에 퍼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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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 백두산 정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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