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는 간첩첩이 아니다

김영승 종군기자 | 기사입력 2019/11/15 [15:48]

아! 나는 간첩첩이 아니다

김영승 종군기자 | 입력 : 2019/11/15 [15:48]

 

나는 간첩이 아니다

 

 

▲ 서울대생이던 박존철 열사도 이곳에서 고문을 받다 사망했다.  © 자주일보 김영승 종군기자

 

악명 높았던 남영동 대공 분실은 민주화운동 기념관으로 개조되었다

밖에서 대공 분실로 썼던 우중충한 건물만 보아도 살인 도살장임을 연상케 한다.

지금 간첩 조작 고문실 5층은 16개 고문실로 되어 있는데 박종철 고문실만 원형 그대로 보존 되고 나머지 15개 고문실은 사진 전시실로 활용되고 있다.

 

515개 고문실에 이곳 고문실을 거쳐 간 고문 피해자들 중 5명을 선정하여 고문 후유증을 극복해 가면서 스스로가 사진기 들고 몸소 찍었던 사진들을 현판화 하여 그 중 250여 점을 본인들이 당했던 고문실에 전시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럼 남영동 대공 분실은 어떤 곳이며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던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선 위치는 남영동 전철 벽에서 2m정도 떨어진 곳에 세워진 우중충한 벽돌건물이다.

고문실 5층은 앞 뒤 창문이 없고 공기통만 있으며 건물 지하실이 없고 5층 고문실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거의 수직 계단으로 공포의 계단으로 불리고 있다.

필자가 오르고 내리는데 오금이 저리고 아찔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보기만 해도 일반 소각장이 아니라 고문 중 숨진 자주 민주 통일 열사들을 화장했음이 명액하다. 김영승 종군기자 자주일보

 

 

 

건물 옆쪽(남영전철역 벽쪽임)에는 소각장이 있고 옆쪽으로 창고가 2개 있다.

이 소각장은 불 지피는 아궁이가 있고 굵은 철재(마루봉)가 평상처럼 엮어 소각장 안에 가로 놓여 있으며 벽돌로 쌓은 굴뚝도 있다.

 

일반 건물에 소각장이 따로 설치된 건물을 보지도 못했는데 특별히 남영동 대공 분실 건물만 소각장이 따로 설치돼 있다는데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필자는 단순히 쓰레기나 서류들을 불태우는 소각장이 아니라 시신을 화장하는 화장장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힘주어 말할 수 있다.

 

박정희 파쇼 정권 때 행방불명자들이 많았고 인혁당 관련자들 사형 집행된 시신을 유가족에게 돌려주지 않고 화장장에 화장해서 유분으로 돌려 준 사례를 보더라도 (사형된 시신의 고문으로 처참하게 된 몰골을 은폐하기 위한 것임) 분명히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유추해 보면 5층 고문실에서 고문하다 공포의 계단으로 내려와서 소각장 옆 창고에 집어 놓고 고문하다 죽으면 소각장에 화장해서 유분을 몰래 외진 곳으로 가 뿌려 버리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감쪽같이 저질렀을 것으로 보는 것 외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소각장 옆에 감시초소도 있고 옆 창고(고문실로 추정)에서 고문을 해도 전철오가는 소리에 고문받는 사람의 신음과 비명을 외부서 들을 수도 없으며 창고 벽에 전기 소켓도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문실 또는 시신 실로 이용했으리라 생각 한다

 

왜냐하면 어느 언론도 남영동 대공 분실의 내부 구조나 소각장에 대한 구체적 사용 용도에 대한 조사 보도를 접하지 못한 현실 속에서 이번에 직접 방문해서 내부 구조와 사용 용도를 유추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남영동 대공 분실이 간첩 조작실이란

 

남영동 대공 분실을 거쳐 간 사람들 중 간첩 조작 고문으로 사형 집행되고 살아남은 당사자들이나 유족들이 있는 분들은 재심에서 거의100% 무재를 받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남영동 대공 분실에서 잔인한 고문을 자행했던 수사관이나 담당 검사들도 생존해 변호사 개업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데도 오늘 이 시각까지 양심선언을 고사하고 전혀 자기들이 지은 죄를 뉘우치지 않고 있다는데 문제가 크다고 생각한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당시 수사관이었던 사람이 골프를 치고 있는 것을 알고 접근하여 고문 받다 살아남은 사람이 무죄를 받았는데 그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뻐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겠는가. 혼내겠지, 전시 같으면 다 죽였을 것이다라고 내 뱄는가 하면, 당시 고문당담 부장검사였던 유협진( 현 변호사) 변호사실이나 김양균(80) 이 집을 찾아도 문조차 열어주지 않고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잘못된 과거 청산도 적폐 중의 적폐인데 *****...

 

111-17일까지 여는 남영동 기념관 5층에서 열리는 사진 전시는 고문 치유전이라 한다. 이들 선정된 고문 피해자들 중 한 분은 고문 후유증으로 치유 전 준비과정에서 사망하고 4명만 남아 있다.

 

고문 피해자들은 고문 후유증으로 육체적 정신적 피해가 극심하게 앓다가 죽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과거 특무대서 무관으로 근무했는데 고문으로 명성을 떨첬던 사람이 감옥안의 비전향 말살 고문에 동원된 깡패 제소자의 공공연한 말을 들어보면

 

일제 때 생체 실험했던 생체실험 기술자들의 말처럼 고문을 하는데 어느 정도 강하게 하면 죽고 어느 정도 하면 살아나가도 얼마쯤 살다 고통 속에 죽게 될 것인가를 오래 하다보면 터득하게 되고 또 배우고 실천에서 쌓는다고 한 말을 되씹어볼 필요가 있다.

 

이번 고문 치유 전의 당사자들도 그 많은 세월 동안 말 못할 망가진 육체적 정신적 고통 속에 죽지 못해 살아왔는가를 그분들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표현 속에 녹아 나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으라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이 분단의 아물지 않는 상처라는 것을 상기할 때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미국의 75년의 지배 속에서 낳은 결과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 근본적 청산의 방법이 무엇인가를 숙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 전시회가 많은 사람들의 참관으로 근본적인 해결의 대책은 될 수 없겠지만 다소라도 위안이 되어 정상적인 삶의 영위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독자 여러분들도 같은 차원에서 많이, 많이 짬을 내 오셔서 그분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부탁한다.

 

끝으로 이 치유 전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수년간 준비해 오늘의 치유전 전을 열 개한 유명한 사진작가 김종진 센터 팀장님을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독자 분들도 박수 갈채를 보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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