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 탐방기자가 터친 격정의 분출

고덕인 기자 | 기사입력 2019/11/25 [11:25]

일본의 한 탐방기자가 터친 격정의 분출

고덕인 기자 | 입력 : 2019/11/25 [11:25]

일본의 한 탐방기자가 터친 격정의 분출

 

조선의 대외 매체인 조선의오늘은 25일 일본특파원이 조선과 사회체를 비판하기 위해 조선을 방문했으나 조선을 실제로 체험하면서 김일성 주석의 업적과 고매한 품성에 매료 되어

교양 되었던 사실을 보도 했다. 기사는 다음과 같다. (편집자 주)

 

                 © 자주일보

 

 

지금으로부터 수십년전인 1970년대초에 한 일본인이 공화국을 방문하였다.

 

그의 이름은 다까기 다께오였다.

 

1930년대 중반기에 요미우리신붕의 장춘특파원으로 활동하면서 일본군의 토벌작전에 종군한적도 있는 그는 제2차 세계대전후 여러 나라들을 다니면서 해당 나라의 현실을 두고 예리한 글을 써낸것으로 하여 탐방기자로서 이름을 날렸다.

 

수십년의 기자생활을 한 전형적인 탐방기자인 그가 평양을 방문한데는 당시 만사람의 심장을 틀어잡으며 세계에 급속히 전파되는 주체사상에 대한 리해와 함께 공산국가의 실체를 파헤쳐보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하다면 그는 공화국에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알게 되였던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20세기의 가장 걸출한수령이시며 절세의 위인이시다.

 

공화국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다까기는 탐방기자의 예리한눈으로 모든것을 대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현실을 파헤칠수록 그는 자기의 예상이 빗나갔음을 자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가는 곳마다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탁월한 령도와 고매한 풍모가 낳은 조선의 기적적인 현실을 직접 목격하는 과정에 그는 주체사상의 거대한 생활력에 대해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까기는 공화국에 대한 비평을 찾으려고 했던 자신이 부끄럽게 생각되였다. 그럴수록 마음속에서는 지난날 약소국이였던 조선을 세계가 우러러보는 존엄높은 나라로 일떠세우시고 인민에게 존엄높고 행복한 삶을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흠모심이 강렬하게 불타올랐다.

 

그러던 주체61(1972)1월 어느날 위대한수령님께서는 국사를 돌보시는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일본의 신문기자 다까기 다께오를 친히 만나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객지에서 설을 맞은 그의 건강을 념려하여주시였으며 그를 옛친구처럼 허물없이 대해주시였다.

 

한없이 소탈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인품에 이끌린 다까기는 그이께 자기의 방문소감에 대하여 이야기해드리면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조선속담처럼 조선의 현실이 일본에서 듣던것과는 너무도 판이한데 대하여 솔직하게 말씀올렸다. 그러면서 조선은 수령과 인민대중간의 결합이 잘된 나라이라는것과 어디 가나 위대한 수령님의 발자취가 스며있고 수령님의 사랑이 넘쳐 흐르고있는데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 다까기가 수령님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말씀올렸을 때였다.

 

그의 말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는 소박한것을 좋아한다고 하시며 자신에 대한 글을 쓰지 말고 근면하고 영웅적인 우리 인민에 대해서 글을 쓰라고 겸허하게 말씀하시였다.

 

순간 다까기는 흥분된 심정을 진정할수가 없었다.

 

자신보다도 인민을 먼저 내세워주시는 이런 위대한령도자를 세상 그 어디서도 만나뵙지 못했기때문이였다.

 

하기에 그는 일본으로 돌아가자마자 위대한 수령님을 칭송하고 공화국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글을 써나갔다.

 

다까기가 쓴 글은 삽시에 폭풍같은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온 일본땅을 위인숭배의 열기로 들끓게 하였다.

 

다까기는 일본반동들의 끈질긴 압력과 협박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문필가로서의 량심을 지켜 정의의 필봉을 더 높이 들었다.

 

그후 다까기는 주체64(1975)5월 또다시 공화국을 방문하여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는 영광을 지니였으며 만경대와 봉화리를 비롯한 혁명사적지들과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에 대한 답사도 진행하였다. 또한 항일의 그날에 위대한 수령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싸우던 투사들을 만나 자기의 취재를 심화시켜나갔다.

 

그는 일본에 돌아가서 위대한 수령님의 위대성을 수록한 도서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위인에 대한 열화와 같은 흠모심을 지니고 낮에 밤을 이어 집필활동을 벌려나가던 다까기는 그만 중병에 걸려 쓰러지게 되였다. 침상에서도 집필을 멈추지 않았던 그는 도서를 채 완성하지 못한 안타까움속에 눈을 감았다.

 

다까기의 부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못내 애석해하시며 그의 유가족에게 조전을 보내주시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일본의 출판보도물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보호속에 다까기의 말년은 영웅적으로 장식되였다고 저저마다 평하였다.

 

이처럼 절세위인의 고매한 풍모는 만사람을 감동시켰다.

 

탁월한 사상과 특출한 령도, 고매한 덕망으로 세계 진보적인민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신뢰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은진정 20세기를 빛내이신 절세의 위인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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