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락 선생 동지들 곁으로, 추모식 가져

김영승 기자 | 기사입력 2019/06/28 [11:51]

이형락 선생 동지들 곁으로, 추모식 가져

김영승 기자 | 입력 : 2019/06/2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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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사건에 연루돼 죽음을 뛰어넘는 고문과 폭행으로 온갖 고초를 겪다 후유증으로 운명을 달리한 자주 통일을 위한 혁명 투사 이형락 선생님이 지난 25일 대구를 떠나 많은 자주통일 열사들이 계신 마석 모란 공원에 안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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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주통일  혁명가이신 이형락 선생은 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빛을 뿌릴 것이다.    © 자주일보

 

▲동지이자 부부로 생을 같이한 한기명<맨 왼쪽>선생     © 자주일보



이형락 선생은 19317/19일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광복 후 15세에 상경하여 서울 성도중학교 재학 중 신문배달하면서 민주학생연맹 활동 중 19503/1일에 서울 시경에 체포되어 학업을 중단하게 되었다.

19506.25 조국해방 당시 석방되어 못 다한 학업을 계속하면서 전노협 결성에 관여해 이일재, 이재문 선생들을 만나게 된다.

 

1956년에는 여학생연맹출신인 한기명 선생과 결혼해 슬하에 딸 삼형제를 가진 가정을 갖게 되면서 동지애적 사랑으로 운동을 하면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생활 했다.

 

그러나 박정희 군사독재는 19641차 인혁당 사건을 조작해 이형락 선생을 주모자로 낙인, 수배령을 내렸고 그에 의해 피신하게 된다.

 

이후 이형럭 선생은 1968730일 인혁당 관련자들의 검거로 피검되어 징역 10년을 받고 복역하다 만기 출옥했다.

 

출옥 후 공안의 무지 막지한 고문을 당했던 그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아픈 상처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셨다.

 

이형락 선생은 누구보다 학구열이 강했으며 가정에 충실하면서 사회진보와 개혁에 일생을 바치신 자주통일과 민족민주열사시다.

 

한기명 선생과 유족들은 과거사 위에 제심을 통하여 결정통고를 받고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날 추모식에는 유족분들과 친우들, 범민련, 민자통 ,민가협 등 후배인사들이 참여하여 선생을 기리었다.

이형락 선생은 경산 천주교 동동묘지에 안장되었다가 43년만에 이곳 마석모란공원으로 이장하게 되었다. (특히 셋째 딸 이단아의 선도적 역할과 김영옥선생의 도움을 받았다고 함)

 

이형락 선생님의 자주통일을 향한 고귀한 넋은 영원히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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