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광주 미국 문화원 점거 투쟁

이윤섭 기자 | 기사입력 2019/12/02 [06:16]

<상식> 광주 미국 문화원 점거 투쟁

이윤섭 기자 | 입력 : 2019/12/02 [06:16]

 

<상식> 광주 미국 문화원 점거 투쟁

 

 

  © 자주일보

 

조선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기관지인 우리민족끼리는 2일 광주 미문화원 점거틔쟁을 상식 기사로 실었다. 1985122일에 전개 되었던 사건의 진실을 알아보자.(편집자주)

 

광주미국문화원점거투쟁은 198512월 남조선청년학생들이 광주시에 있는 미국의 사상문화적침투기관인 문화원을 점거하고 벌린 반미, 정부투쟁이다.

 

남조선인민들속에서 반미자주화와 반파쑈민주화투쟁이 앙양되고있는 가운데 전남대학교와 전북대학교 학생들은 1985122일 오전 광주시에 있는 미국문화원을 점거하고 미국대사와의 면담과 도청광장에서 민정당측과의 대토론회 개최 등을 요구해나섰다. 학생들중 6명이 먼저 도서열람객으로 가장하고 문화원안으로 들어가고 뒤이어 3명의 학생들이 기미를 차린 경찰관들로부터 제지를 받자 놈들을 밀어제치고 현관안으로 뛰여들어갔다. 먼저 들어간 학생들이 뒤쫓아오는 경찰들에게 건전지 2개를 던지며 폭발물이다.라고 소리치자 놀란 경찰관들이 주춤하는 순간 학생들은 원장실을 순식간에 점거하였다. 학생들은 문을 안으로 잠그고 길가쪽 유리창에 삼민헌법 쟁취하자, 민중생존권을 위협하는 수입개방 철페하라등의 벽보들을 내붙였다. 학생들은 흰바탕에 붉은색으로 삼민이라고 쓴 머리띠를 두르고 미국의 수입개방요구 철페등의 구호를 웨치며 롱성에 들어갔다. 학생들은 미국은 수입개방압력을 중단하라는 내용이 들어있는 미국행정부에 보내는 글, 미국은 우리의 생존권을 짓밟는 수입개방압력을 중단하라는 내용이 담긴 왜 우리는 미국문화원에 들어가야만 했는가, 경고장4종의 인쇄물을 창밖으로 뿌렸다.

 

파쑈도당이 수많은 경찰병력을 동원하여 미국문화원을 포위하고 위협공갈하였으나 학생들은 의자와 책상으로 바리케드를 쌓고 화염병으로 방어태세를 취하면서 9시간이상 롱성을 계속하였다.

 

광주미국문화원은 이 점거투쟁이 일어나기 전에도 두차례(1980. 12. 9, 1982. 11. 20)에 걸쳐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공격에 의하여 불길에 휩싸였었다. 광주미국문화원점거투쟁은 날로 세차게 벌어진 남조선인민들의 반미자주화, 반파쑈민주화투쟁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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